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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양사건’보다 무서운 것

수사와 언론, 피해자 보호원칙 지켜야


금오해령 기자
2004-12-13 00:35:05
속칭 ‘밀양사건’으로 불리는 집단성폭력 사건이 CBS의 방송국의 보도를 시작으로 알려진 이후 현재까지 이 사건은 뉴스검색의 상위권을 차지하며 전국민에게 알려졌고, 언론은 앞다투어 후속보도를 내고 있다. 사건 내용부터가 끔찍한 범죄임이 명확하나 그것이 수사되고 알려져 온 과정은 더욱 한국 사회가 성폭력을 대하는 현실을 보여주고 있기에 더욱 공포스럽다.

피해자 인권 고려 없는 수사체계 드러나

무엇보다 신고를 감행한 피해자와 피해자 가족이 신고 이후 수사과정에서 겪은 고통은 그간 성폭력 사건 해결을 위해 노력했던 많은 피해자들이 겪었던 과정을 고스란히 반복하고 있다. 익히 알려진 경찰관의 “밀양 망신 다 시킨다” 발언도 그렇거니와 사건 비공개 약속이 지켜지지 않은 점, 여경 수사를 약속했으나 지켜지지 않은 점, 성폭력 사건의 특수성을 고려하지 않은 채 피해자에게 모욕감을 주는 방식으로 진술을 해야 했던 점 등이 그렇다.

문제는 피해자가 겪은 그러한 고통들이 비단 이번 사건에 특수하게 적용되는 것이 아니라 한국 사회에서 지속적으로 문제제기 되어 왔다는 데 있다. 수사기관의 적극적인 협조 하에서도 많은 용기가 필요하고 지난하고 수치심을 감수한 진술과정을 거쳐야 하는 성폭력 사건임에도 불구하고 주먹구구식 수사로 피해자들은 지속적인 피해를 경험해야 한다. 이번 사건은 사건이 극단적이고, 언론을 통해서 세세한 부분이 알려져 왔기 때문에 그나마 ‘공분’을 불러왔으나 그렇지 못한 경우 개개인의 피해자들이 어떤 과정을 거쳐야 했는지는 짐작할 만하다.

언론의 마구잡이 식 보도

이번 사건을 통해서 가장 우려가 되는 것 중의 하나는, 기성언론들이 앞다투어 걱정했던 ‘막 나가는 10대’나 ‘포르노의 유통’ 같은 것이 아니다. 무엇보다 그렇게 걱정이 많은 언론들이 해온 마구잡이 식 보도가 보여준 한국 언론의 선정성이다. 마치 황색신문이 성폭력을 흥미 있는 이야기 거리로 전락시키는 것과 다르지 않았다.

이 사건이 알려진 직후부터 피해자의 주소지가 구 단위까지 알려져 피해자가 거주하는 그 좁은 도시에서 피해 사실을 감출 수가 없게 되어버렸다. 그뿐 아니라, 초반에 정확하게 확인되지 않은 사실이 오보됨에 따라 피해 사실이 없는 사람까지 피해자로 묘사되거나 있지도 않은 사실이 사실인 것처럼 보도된 경우들도 많아, 피해자와 피해자 가족들에게 고통을 안겨주었다.

CBS 방송의 ‘통곡 인터뷰, 작은딸은 성폭행 당하지 않았다’에서 피해자의 어머니가 언론에 대한 강한 불신감을 보이며 “제발 언론에서 그만 다뤘으면 좋겠다… 죽으라는 얘기로 들렸다”라고 호소했다는 것은 이 사건에서 피해상황 못지 않는 가해를 하고 있다는 것은 역설한다. 언론이 이 사건의 심각성을 인식하고 피해자와 피해사실에 대한 최소한의 고려가 있었다면 과연 사태가 이렇게까지 되었을까.

심지어 기사거리를 만들어낼 필요가 있었던지 내일신문은 "한순간 실수로 인생 망쳐 - 울산 여중생 성폭행 사건 관련 학생 참회"라는 제목의 기사를 통해서 아예 소설 한 편을 쓰고 있다. "친구들과 어울려 한번 실수한 것이 이렇게 큰 범죄가 될 줄 몰랐습니다"라는 가해자의 말을 그대로 옮기며 '성적도 상위 5%에 들어 누가 봐도 별 문제 없는 모범생'이라고 소개했다. 이 기사 또한, 이 가해자를 고등학교가 몇 곳 없는 밀양에서 ‘학생회장’이라고 소개함으로써 손쉽게 신분을 노출하고 이후 인터넷에 공개된 가해자 사진이 유포되는 빌미를 제공했다.

경향신문은 “밀양 갈수록 性風확산 ‘충격’”이라는 제목으로 이 사건에 ‘성풍’이라는 어이없는 명칭을 달기 시작했다. 이 사건을 한 인간의 인권을 유린한 폭력사건으로 이해한다면 어떻게 그런 식의 보도를 할 수 있는지 의심스러울 따름이다. 하지만 그러한 마구잡이 식 오보에 대해서 정정이나 사과의 노력을 보인 것은 오직 CBS 측뿐이며 다른 언론들은 도무지 문제를 인식하고 있는지조차 의심스럽다.

인권에 대한 이해 없는 ‘관심’

언론이 앞장서서 들쑤셔 놓은 듯한 이 사건은 네티즌들이 개입하면서 더 큰 파문을 일으키고 있다. ‘밀양연합 전원 강력처벌 바랍니다!’라는 카페가 결성이 되었고, 분노한 네티즌들에 의해서 가해자들의 신상과 사진이 공개되었으며 이들의 미니홈피와 휴대전화에는 비난과 욕설이 쏟아졌다. 이러한 집단적 분노의 배경에는 여러 가지 원인이 있지만 가장 큰 이유는 ‘죄질에 비해 미약한’ 조치가 이루어졌다는 점이다.

네티즌들의 분노는 한편 성폭력에 대한 달라진 인식을 반영하고 있기도 한다. 성폭력 사건에 대해 늘 꼬리표처럼 따라붙던 ‘피해자 행실론’ 등을 찾아보기 힘든 것이 그 예다. 또한 성폭력 사건에 대해 강력한 처벌을 요구하는 등, 성폭력을 강력 범죄로 인식하기 시작했다는 점은 긍정적인 변화라 할 수 있다.

그러나 여전히 우려를 불러일으키는 내용들이 지나치게 자주 눈에 띈다. 가해자나 가해자 가족들에 대해 똑 같은 성폭력으로 응징하자는 식으로, ‘폭력에는 폭력으로 대처’하자는 당당한 주장들이 쉽게 나돌아 다니는 것이다. ‘테러에는 전쟁으로 대처’ 해야 한다는 부시 식의 논리가 상기되어 소름이 끼친다. 이러한 태도가 단지 말의 배설에서 그치지 않는다는 것은 피의자들의 사진이 인터넷상에 돌아다니기 시작하면서 증명됐다. 결국 관련 없는 사람들의 사진까지 함께 퍼 날라지면서 또 다른 인권침해가 벌어지고 있는 것이다.

왜 이 사건이 피해자에게 고통을 주는 방식으로 회자되면서 이렇게 전국민의 관심사가 되는가? 이 사건은 ‘성과 관련된, 무언가 엽기적인 사건’이 아니라 성적 약자에 대한인간에 대한 인권유린과 폭력에 대한 사건이다. 그것이 문제라는 것에 동의한다면 수사기관, 언론 그리고 그것을 대하는 국민들의 분노는 폭력에 대한 것이어야 한다.

가해자 처벌, 피해자 보호라는 원칙 확립해야

성폭력 수사에 대한 개념 없는 수사기관, 뭔가 자극적인 이야기 거리를 끄집어내고 싶어하는 언론, 인권에 대한 감수성 없는 일부 폭력적인 반응 들은 이 사건은 이 사회에서 성폭력 문제가 어떤 식으로 이해되고 다뤄지는가를 보여주었다. 이제 중요한 것은 분노를 긍정적인 방향으로 이끌어 내는 것이다. 성폭력 피해자를 보호하지 못하고, 가해자를 처벌하지 못하는 시스템을 바꾸지 않으면 같은 사건은 되풀이 될 것이 뻔하기 때문이다.

피해자에게 “꼬리친 것 아니냐. 밀양 물 다 흐려놨다”는 등의 폭언을 한 것으로 알려진 경찰에 대해 여론의 질타가 따르자 해당 경찰서는 문제의 발언을 한 경사를 징계할 방침이라고 밝혔다. 그러나 단순히 문제 경찰의 징계만으로 사건을 무마시키려고 해서는 안될 것이다. 이러한 폭언이 나온 배경은 단순히 한 경찰 개인의 도덕성 문제에서 기인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강지원 변호사는 연합뉴스와의 기자회견에서 “전국 247개 경찰서 중 진술녹화실이 없는 곳이 4곳 있으며 그 중 하나가 울산경찰서”라고 밝혔다. 즉 이는 성폭력 사건의 심각성과 피해자 보호의 필요성에 대해 무감한 경찰 시스템이 가져온 결과다.

현재 해당 경찰은 여론의 눈치를 보며 가해자들을 추가 구속하고 있지만, 당장의 구속 여부보다 이후의 실질적 처벌이 더 중요하다. 현재 대부분의 성폭력 사건은 형량도 짧고 대부분 형기 만료 전에 가석방 되어서 나오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또한 수사 과정과 그 이후의 피해자 보호시스템이 제대로 마련되지 않았고, 피해자의 심리치료 등에 대한 지원도 미흡하다. 국민적인 분노가 모아지고 있는 이번 사건을 성폭력 사건에 있어서 피해자에 대한 적극적 보호를 마련하는 계기가 되도록 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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