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수정 삭제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수정 삭제
출산파업이 계속되는 이유

-----여성들이 말하는 저출산 해법


전정양숙 기자

M대리(31세, 여성)는 최근 ‘건빵 도시락’ 사건으로 불리는 결식아동 부실 도시락 사건을 듣고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지난 10월 보육원에 맡기고 있던 20개월 된 아들이 영양실조 진단을 받았던 기억이 되살아났기 때문이다.

출산과 육아에 있어 가족의 도움을 받을 수 없었던 M씨가 선택한 것은 도우미 할머니를 고용하는 것이었다. 사람을 구하는 것은 쉽지 않았고, 그나마 마음이 맞았던 할머니 역시 집안 사정으로 인해 9개월 만에 아이를 키워줄 수 없는 상황이 되었다. 그래서 결국 동네 아파트 놀이방에 아기를 맡기게 되었다.

7개월 후, 한달 넘게 감기가 낫지 않아 병원에 찾은 M대리 부부는 자신의 아들이 ‘영양실조’라는 충격적인 진단을 받았다. 아기가 영양실조인 이유는 놀이방에서 분유 외에 이유식을 먹이지 않은 데서 비롯된 것이었다. 물론 M대리가 받은 놀이방 스케줄에는 다양한 이유식이 포함되어 있었지만, 현실은 그렇지 못했다.

M씨가 받은 상처는 비단 아기의 건강 때문만은 아니었다. 주변 사람들의 반응, 즉 “엄마가 어떻게 애가 그 지경이 될 때까지 몰랐느냐”는 시선이 그를 더욱 질타했다. 놀이방에 아기를 찾으러 가는 시간은 오후 7시, 분당에 거주하고 있는 그가 6시 칼 퇴근을 하고 발을 동동 굴러야 간신히 도착할 수 있는 시간이다. 남편이 출근 시간에 아기를 맡기는 일을 담당했지만, 일찍 출근해야 하는 날이면 아침시간은 전쟁이었다. 엄마로서의 자책과 믿고 맡길 곳이 없는 현실에 대한 절망은 이루 말할 수 없었다.

결국 M씨는 건강이 좋지 않는 친정 어머니 댁 근처로 이사해, 보육원과 도우미, 친정의 도움을 받으며 생활하고 있다. 지금도 아기의 음식 때문에 걱정이라는 M씨는 이렇게 말한다. “아이를 믿고 맡길 수 있는 곳이 정말 절실해요. 가끔 보육원에 가서 일일이 음식을 확인해보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아요. 아이가 뭘 먹고 있는지, 혹시 수면제를 먹이는 것은 아닌지 걱정이에요. 하지만 만약 내가 그렇게 한다면 이상한 엄마라고 찍혀서 아이에게 불이익이 갈 까봐 그렇게 할 수 없어요. 또 회사원이 평일에 어떻게 가겠어요.”

출산, 육아 지원제도는 그림의 떡!

저출산 시대, 출산과 육아를 위한 정부와 기업의 지원에 대한 다양한 의견을 알아보기 위해 간호사, 교사, 세무사, 공무원, 대기업 회사원, 중소기업 회사원, 비정규직(텔레마케터, 웹디자이너), 자영업 등 10명의 비혼, 기혼여성을 대상으로 인터뷰를 진행했다.

인터뷰를 한 여성들이 얘기하는 내용의 공통점이 있다면 출산과 육아에 대한 부담을 심각하게 느끼고 있다는 점이었으며, 차이점은 자신이 처한 위치에 따라 출산휴가와 육아휴직, 산전휴가, 생리휴가, 그리고 육아보조금 지원 현황 등 각종 제도가 실현되는 상황이 천차만별이라는 점이다.

크게 나누어 살펴보면, 전문직, 대기업, 중소기업, 비정규직으로 그룹을 지을 수 있었으며, 쉽게 예상할 수 있는 바대로 출산과 육아에 대한 부담감은 전문직에서 비정규직으로 갈수록 더욱 심각했다. 이들은 모두 “제도가 존재해도, 이를 직접 사용하는 사람은 매우 적다”고 말했다.

중소기업과 비정규직의 경우에는 출산휴가 3개월을 제대로 사용하는 경우가 거의 없었으며, 대기업과 전문직의 경우에는 출산휴가가 보장이 되도 육아휴직을 사용하는 경우가 거의 없었고, 복귀 후에 직무에 대한 불안감이 상당히 높았다. 아이를 맡길 곳은 없고, 부모나 가족의 도움이 없이는 일과 육아를 병행하는 것은 자신의 일에도 가정에도 심각한 타격을 준다는 것이었다.

‘출산은 재앙’

“출산은 여성에게 축복이자 재앙입니다. 아이를 낳는 순간, 일과 가정 사이에서는 전쟁이 시작됩니다. 정리해고 등으로 불안한 상황에서, 내 일자리를 지키는 것만으로도 힘든데, 아이를 낳고 나면 아이를 방치하면서도 일도 집중하기 힘든 상황이 연출되죠. 아이를 키워줄 사람이 없는데, 그렇다고 회사의 일을 포기할 수는 없잖아요. 3개월은 울면서 다녔어요. 정말이지 지옥 같은 시간이었죠.”

대기업 회사원인 S대리의 말이다. S대리는 결국 지방에 있는 시댁에 아이를 보냈고, 1달에 한번 아이를 보러 내려가고 있다. 직무 특성상 야근이 잦고 퇴근 시간이 불규칙하기 때문에 부부만으로는 아이를 키울 수가 없었다. 밤새 보채는 아이 때문에 남편과 자신 모두 밤잠을 설쳤고, 아이를 맡기고 찾는 시간 때문에 부부싸움도 잦았다. 기업의 현실을 잘 알고 있기 때문에 고생하는 동료들에게 언제까지나 양보나 이해를 요구하기도 힘들었다. 자신에 대한 그들의 배려가 오히려 여성의 한계처럼 느껴져 심리적인 압박이 심했다고 한다.

아동복 디자이너인 K씨(29세) 경우, 유아/아동복 디자이너실 6명중 실장 만이 기혼여성이었고, 결혼을 하고 나서 임신을 하면 모두 퇴직을 하거나 이직을 하고 있다고 했다. 섬유 패션업계가 침체기에 있는 현실에서 중소기업의 경우, 충원 인력은 기대할 수 없는 현실이라는 것이 가장 큰 문제였다. 또 각각의 디자이너들이 한 브랜드의 디자인을 담당하고 있기 때문에 충원이나 대체인력이 있다고 해도 그 디자인의 성격을 그대로 살려서 업무를 진행하기란 쉽지 않기 때문이다.

신입사원의 경우에도 최소 5개월 이상 근무를 해야 브랜드 디자이너의 일을 지원하는 정도의 수준이기 때문에 월급제 전문직 여성의 경우에는 임신이나 출산 자체가 경력에 있어 ‘마이너스 그 자체’이라는 것이 K씨의 말이다. 그래서 그는 이직이 가능할 정도의 경력이 쌓일 때까지 결혼을 미루고 있는 실정이다.

주 6일 10시간 이상 근무를 해야 했던 텔레마케터 A씨(28)는 임신 5개월 만에 직장을 그만두었다. 임신 초기에 입덧이 심했고, 복통으로 인해 휴가를 자주내야 하는 상황이 되면서 계약직인 그를 향한 주변의 눈치가 심해 더 이상 재계약을 하기 힘들다는 판단에서였다. 그의 말에 따르면 1년 단위로 계약을 갱신하는 계약직의 경우, 결혼과 임신을 곧 사직일 수 밖에 없다는 것이다.

육아휴직은 최종 답안이 아니다

육아휴직의 경우, 기업 내 전문직(PM, CM, 홍보, 마케팅, 리서치 등)의 경우에는 앞에서 소개한 의류디자이너와 같이 1년 이상을 계획하고 업무를 추진해야 하기 때문에 여건상 불가능하다. 그리고 대다수 직장의 경우, 출산이나 육아휴직에 따른 업무 공백에 따른 대체인력 투입은 쉽지 않다. 따라서 동료들의 부담이 증가하고, 출산을 하는 여성들이 동료들에게 미안한 마음을 가질 수 밖에 없는 구조가 되고 있는 것이다. 육아휴직을 하게 된다면, 아예 자리를 뺄 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은 공연한 피해의식은 아닐 것이다. 또, 복직 이후 업무에 대한 불안, 원치 않는 부문으로의 발령이 큰 걱정거리가 되고 있다.

육아휴직은 어쩔 수 없는 상황에서 선택하는 ‘최종 선택지’일 뿐이다. 육아휴직 기간은 1년이지만, 그러나 아이의 양육기간은 1년으로 끝나지 않는다. 따라서 많은 직장여성들이 육아휴직은 임시적인 대안일 뿐, 본질적인 해답이 될 수 없다고 말하는 이유는 여기에 있다. 그나마 그 최종 선택지인 육아휴직제도는, 휴직 이후의 고용불안을 안고 가겠다고 결정한 여성들조차 용이하지 않은 선택이라 것이 우리의 현실이다.

육아의 문제는 비단 여성만의 문제가 아니다. 자영업을 하는 H씨(33세)는, 직장에 다니는 남편이 육아비용과 육아를 담당해줄 기관이 없다는 이유로 둘째를 낳는 것에 동의하지 않아 딸 하나로 만족해 살고 있다. 아내와 맞벌이를 하고 있는 회사원 K씨(33세)는 밤새 우는 아이로 인해 업무에 지장이 많아 이제는 아이를 더 낳지 않겠다고 결정했다고 한다. 그에 따르면 아내가 원하더라도 육아부담으로 인해 남편들이 출산을 반대하는 경우도 상당하다고 한다.

신문배달간 아내와 근무를 간 남편이 집을 비운 사이 불이나 자녀를 잃은 경우처럼, 부모의 부재 시 아이들은 위험에 노출되기 쉽다. 굶어 죽는 아이가 생겨나고 있는 현실에서 출산을 장려하겠다는 정부의 발언은 공허한 메아리일 뿐이다. 겨우 12시간을 운영하는 놀이방에 아기를 맡길 수 있는 것도 그나마 돈 있는 가정에서나 가능한 일이고, 동네가 좋지 않으면 그것도 여의치 않다.

양육할 수 있는 기반, 시스템의 변화 절실

인터뷰를 한 여성들의 대부분은 보다 실효성 있는 제도가 마련되길 기대했다. 우선 남녀 모두 탄력근무제, 즉 출퇴근 시간을 9~6에서 7~4나 10~7등으로 변경하는 것이 양육에 큰 도움이 된다고 말했다. 실제 9~6를 실행하더라도 야근이 많은 직장인들에게 어쩌면 이 역시도 형식만 갖춘 제도로 남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핵심 업무시간은 10~4라고 가정할 때, 근무시간을 조정해 부담을 덜 수 있다면 육아휴직보다 더 나은 효과를 가져올 수 있다는 의견이다.

캐나다에 이민을 간 한 여성 A씨는 “4시만 되면 남성들이 아이를 학교에서 데려오기 위해 퇴근하는 모습에 감탄했다”고 말한다. 아이의 양육에 있어 부부가 함께 참여할 수 있는 기반이 마련되어 있다는 것을 이런 작은 부분에서부터 실감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보다 더 핵심적인 제도는 아이를 믿고 맡길 곳이 없는 현실이 빨리 개선 되어야 한다는 점이다. 턱없이 부족한 보육시설, 턱없이 비싼 보육비용 등은 정부가 기업 모두가 함께 풀어가야 할 숙제다. 500인 이상 사업장에 보육시설을 설치하는 방안이나, 보육시설을 증대하는 방안은 시일을 두고 해결해야 할 것이 아니라 당장이라도 해결해야 하는 시급상황이라는 것이 기혼 직장여성들의 이야기다.

그러나 이 역시도 넘어야 할 산이 많다. 400여명이 근무하는 한 회사의 경우, 직장 내 보육시설을 만들기 위해 사내조사를 한 결과 이를 사용하겠다는 사원수가 10명 미만이었다고 한다. 이유는 우선 여성사원 수가 적어 1~3세 아동을 가진 여성수가 20명이 채 안되었고, 남성사원 중에는 사용하겠다는 사람이 전혀 없었다는 것. 또 차량이 없는 경우 아이를 회사까지 데려올 방법이 없다는 것이 그 이유다. 결국 보육시설 마련 안은 수요부족으로 인해 무산되었다. 만약 남성도 함께 사용하겠다는 사람이 10명만 있어도 무산되지는 않았을 것이라는 것이 이 프로젝트를 추진했던 담당자의 말이다.

최근 ‘배우자 출산휴가제’ 도입 방안은 모성휴가제도를 여성이 전적으로 사용하는 것은 현재 여성이 지고 있는 자녀양육의 역할을 강화하는 한계를 극복하고, 배우자의 출산과 육아참여를 유도한다는 점에서 매우 의미 있는 시도라고 여겨진다. 이 제도의 중요한 의미는 남성과 여성, 공동의 육아참여기회를 확대하는 것에 있다. 그러나 단순히 제도를 만드는 것만으로 문화가 변화하기를 기대하기는 힘들다. 여성노동자들은 “제발 있는 제도라고 제대로 쓸 수 있게 해달라”고 요구한다.

출산을 계획할 수 있는 시대가 오려면

출산이 곧 일을 그만둬야 하는 상황이 되는 현실, 임신 중에 몸이 안 좋아도 그냥 출근을 할 수 밖에 없는 이런 현실에서 정부와 언론의 저출산 문제에 대한 관심은 당사자들의 현실보다는 ‘아이 낳으라’는 무리한 주문에 가깝다.

각 사업장에서 보육시설을 만들기 어렵다면, 공중화장실처럼 건물마다 의무적으로 보육센터를 만들도록 한다든지, 탄력근무제를 실행한다든지, 또 출산과정에서 필요한 의료 검진비를 국민의료공단에서 지원한다든지 하는 실질적이고 적극적인 해결책이 필요하다. 또한 남성도 함께 출산과 육아제도에 편입되고 실행해야만 여성들이 출산을 계획할 수 있는 시대가 다가올 수 있을 것이다. 그렇지 않다면 실질적인 해답이 마련될 때까지 여성들의 ‘출산파업’은 계속될 것이다.



ⓒ www.ildaro.com




?

SCROLL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