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이주여성 생활실태 들여다보니…절반 가까운 44%가 언어폭력 경험

[세계일보]한국으로 시집온 몽골인 A(35)씨는 결혼생활 4년 동안 생활비는커녕 용돈 한푼 받지 못했다. 시어머니는 결혼 초부터 "못사는 나라에서 왔고 한국말도 못한다"며 무시하고 폭언을 퍼부었다. 막상 A씨가 한국어를 배우려고 하면 "여자는 살림만 잘하면 된다"며 보는 책을 빼앗아 찢기도 했다. 남편은 툭 하면 술 마시고 들어와 주먹을 휘둘렀고, A씨가 고향에 다녀오자고 하자 화를 내며 외국인 등록증을 찢었다. A씨는 "마음을 털어놓을 사람이 없어 외롭고 힘들다"고 토로했다.

결혼이주여성들의 '가정 내 인권침해'가 심각한 것으로 나타나 정부 차원의 개선 노력이 시급하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물리적 폭력은 물론 출신 국가를 무시하거나 인격적인 모욕을 주고, 심지어 외출 금지와 신분증 압수 등도 자행되는 것으로 나타났다. 국제결혼이 전체 결혼의 7%에 달할 만큼 빠르게 다문화사회가 되고 있지만, 일상화된 편견과 차별 등으로 이들의 인권 문제는 '제자리걸음'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 right > < right >



클릭하면 큰 그림을 볼 수 있습니다

◆일상화된 언어폭력에 상처받아

한국형사정책연구원의 '결혼이주여성 인권침해 실태 및 대책 연구'에 따르면 중국, 베트남, 필리핀, 캄보디아 출신 여성 811명 중 44.4%인 356명이 '가정 내 언어폭력을 경험했다'고 답했다. 언어폭력은 주로 남편이나 시댁 식구들이 이주여성 출신국의 경제 수준이 낮다는 점을 들어 무시하거나 문화를 이해하지 못하는 데서 비롯됐다. '남편이나 시댁 식구가 친정 부모나 모국을 모욕한 적 있느냐'는 문항에 33.2%가 '그렇다'고 답했다. 이는 이주여성 출신국에 대한 가족들의 이해가 크게 부족하다는 사실을 단적으로 드러낸다.

베트남 출신 B씨는 시어머니로부터 "너희 나라는 가난해서 고기도 못 먹어봤지"라는 말을 여러 차례 들어야 했다. "고기를 안 먹어봤으니 먹지 말라"며 임신 기간에조차 고기를 못 먹게 해 황달에 시달렸다. 캄보디아에서 온 C씨는 "남편이 생활비를 줄 때마다 '이 돈을 캄보디아 돈으로 환산하면 얼마나 많은지 아냐'면서 면박을 줘 자존심이 상했다"고 털어놨다. 베트남 출신 D(26)씨는 "고향 음식을 만들었는데 시어머니가 '개밥 같다'며 핀잔을 줬다. 무심코 던진 말이었지만 내게는 굉장히 상처가 됐다"고 털어놨다.

◆외출금지는 다반사… 감금·폭행도

이주여성들에 대한 편견은 물리적 폭행이나 감금으로 이어지기도 한다. 베트남 출신 E씨는 임신한 뒤 태아에게 고향 노래를 들려주고 싶어 베트남 음악을 틀었다가 남편에게 폭행을 당했다. 또 다른 베트남인 F씨는 '생긴 게 마음에 안 든다' 등의 이유로 시어머니로부터 맞고 지낸다. 시어머니는 F씨가 외출도 마음대로 못하게 했고, 출산한 지 8일이 지났는데 때리기도 했다. 실제 연구 결과에서도 '가정에서 신체적 폭력을 당한 경험이 있다'는 응답은 18.6%(148명)에 달했다. 또 30.6%는 '자유롭게 외출을 못하게 했다'고 답했고, 남편이나 시댁 식구로부터 감금당한 경험이 있다는 비율도 4.2%나 됐다.

필리핀 출신 G(24)씨는 "'못사는 나라에서 와서 잘 배우지 못했다. 한국 사람이 돼야 한다'며 훈련하듯 마음대로 때리거나 가둬도 된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많다. 도망갈 수 있다며 신분증을 빼앗기도 한다"고 말했다. 김지영 연구위원은 "가족들의 몰이해로 이주여성들이 받는 인권침해가 심각한 것으로 나타났다"며 "가정폭력 범주에 언어폭력도 포함하고 남편과 시댁 식구들에게 이주여성 인권에 대한 교육을 강제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김유나 기자

[Segye.com 인기뉴스]
?

SCROLL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