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사회와 단절된 채 생활하던 모자(母子)가 인천의 한 다세대주택에서 싸늘한 주검으로 발견됐다.

이들을 사회와 연결하는 유일한 끈은 구청 사회복지과 직원뿐이었다.

가혹한 세상의 벽 앞에 좌절했을 70대 노모와 장애를 가진 아들은 유서도 남기지 않은 채 스스로 세상을 등졌다.

인천남부경찰서는 지난 4일 오후 1시께 남구 숭의동의 한 다세대주택에서
A(70·여)씨와 아들 B(45·시각장애6급)씨가 숨진 채 발견됐다고 7일 밝혔다.

경찰에 따르면 이들은 스스로 방과 창문 틈새를 테이프로 막고 번개탄에 불을 붙인 뒤 나란히 누워 생을 마감했다.

아들은 반듯이 누워 천장을 바라봤고 A씨는 아들을 바라본 채 비스듬히 누워 있었다.

이 가족의 한 많은 인생사는 45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미혼모에 대한 인식이 지금보다 더 좋지 않던 시절 A씨는 홀로 아들 B씨를 출산한다.

장애를 갖고 태어난 아들을 위해 사회적 냉대와 편견을 견디며 살아온 A씨는 결국 작은 식당을 냈고
인천에서 제법 큰 일식집으로 번창시켰다.

몸이 불편한 아들의 자립 기반 마련을 위해 비디오방을 차려주기도 했다.

하지만 행복은 길지 않았다.

B씨가 사업자금을 사기를 당하면서 가계가 흔들리기 시작했다.

A씨의 일식집과 아들 B씨가 운영하던 비디오방은 문을 닫았고 그 때 끌어다 쓴 사채가 족쇄가 돼 힘겨운 삶은 이어나갔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B씨가 나머지 한쪽 눈의 시력마저 잃어가면서 성격도 점점 폐쇄적으로 변해
수년 동안 사회와 단절된 생활을 해야 했다.

결국 당장의 생활비와 병원비 마련을 위해 살던 집까지 전세를 놓고
지난 9월 아들과 함께 보즘금 500만원에 월세 20만원짜리 집으로 이사를 했다.

보증금 일부도 구청의 지원을 받았다.

이들은 가족과도 왕래가 없었다.

홀로 출산한 A씨에겐 직계가족이 없고 그나마도 연락을 주고 받던 A씨 언니들도
모두 세상을 떠 장례비용 마련조차 쉽지 않은 상황이었다.

경찰에 따르면 A씨 휴대전화에는 스팸문자가 대부분이었고 어렵게 조카의 전화번호를 찾아 장례비를 마련했다.

이들의 자살 기도는 이번 뿐만이 아니었다.

살던 집을 전세로 내놓기 전 집에 농약을 사다 놓는가 하면 구청과 함께 개인파산을 진행하던 지난해 4월에도
자살 이야기를 남긴 뒤 수일 동안 구청과 연락이 닿질 않아 담당 공무원들의 애간장을 태웠다.

남구청의 한 관계자는 "당시 수일 동안 A씨와 연락이 닿질 않았는데 전북 김제의 한 기관에서
A씨와 B씨를 보호하고 있다는 연락이 왔다"며 "당시 A씨가 '아들과 함께 다시 잘 살아보기로 했다'고 말했다.
이후로도 살아보려는 의지를 자주 보였는데 이런 결과가 일어나 매우 안타깝다"고 말하며 눈물을 보였다.

이 가정이 국가로부터 지원받은 금액은 월 30만원 남짓이다.

A씨의 국민연금과 노령연금, B씨의 장애수당이 전부다.

기초생활수급 가정이었지만 학익동에 보유한 빌라 때문에 생계비 지원은 없었다.

그나마 남구청이 연결해준 월 20만원의 개인후원이 없었다면 입에 풀칠도 어려운 상황이었다.

현행 기초생활수급법은 일정한 소득이나 재산이 있으면 기초생활수급자라 하더라도 생계비를 지원받지 못하게 돼 있다.

하지만 이들이 보유한 빌라는 이른바 '깡통'으로 이를 팔아도 세입자에게 전세금을 돌려주기 어려울 정도였다.

남구청의 한 사회복지 담당자는 "이 가족을 남에게 어려운 사정을 얘기하거나 신세지는 일을 싫어할 정도로
올곧은 사람들이었다"고 말했다

그는 "이들의 죽음은 최근 세 모녀 자살사건이 어느 정도 영향을 준 것 같다"며
"또 다른 비극이 일어나지 않도록 사회가 관심을 기울여야 한다"고 말했다.

1981rooster@newsis.com
?

SCROLL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