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수정 삭제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수정 삭제
늑대와 여우의 사랑?

정희진/서강대 강사


[한겨레]야! 한국사회

사람들이 인생에서 경험하는 거의 모든 상처는, 상처 주는 이와 받는 이가 함께 살아가는 특정한 사회의 가치 체계로부터 발생한다. 한 사회의 지배적인 의미나 상징 질서는, 사회 구성원들이 내면화하고 있기는 해도, 모든 사람들의 이해를 반영하는 것은 아니다. 그래서 우리가 정상적이며 자연스럽다고 가정하는 ‘문화’, ‘규범’, ‘전통’, ‘비밀’은 어떤 사람들에게는 폭력이거나 고통일 수 있다. “너(여성)의 벗은 몸을 사진 찍어서 인터넷에 올리겠다”, “내가(남성) 너를 성폭력 한 것을 세상에 알리겠다”는 말은, 여성의 인격과 존재성을 성/몸으로 환원하는 가부장제 사회에서만 협박으로 작동할 수 있다. 신경질적 반공주의, 레드 콤플렉스가 집요한 사회에서는, 타인을 ‘빨갱이’로 지목해야만 내가 ‘빨갱이’가 아니게 된다. 이런 사회에서 개인의 시민권은 “너는 빨갱이닷!” 이 한 마디에 얼마든지 박탈될 수 있다. 협박 범죄는 가해자와 피해자가 공유하는 문화적 신념이 없다면 불가능한 것이다.

며칠 전, 내 글의 ‘팬’이라는 독자의 이 메일을 받았는데, 마지막 구절이 놀라웠다. “그렇지만 동성애까지도 허용하자는 주장에 대해서는 동의하기 어렵습니다” 나는 동성애를 허용하자고 주장한 적이 없을 뿐 아니라, 누가 동성애를 ‘허용’하거나 ‘금지’할 수 있는 위치에 있는지도 의문이 아닐 수 없다. 여성이나 흑인, 장애인 모두 누군가 ‘찬성’하지 않아도 세상 안에 살아가는 것처럼, 동성애자 역시 누군가의 ‘동의’와 ‘허락’이 있어야만 존재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인권 운동가 한채윤의 지적처럼, 가부장제 사회의 주장 혹은 관습대로 남자는 늑대이고 여자는 여우라면, 늑대는 늑대끼리, 여우는 여우끼리 사랑하고 섹스 하는 것이 ‘정상’이다. 늑대랑 여우랑 섹스를 하다니! 이야말로 하느님의 섭리를 어긴 것이며 자연의 질서를 파괴하는, 너무나 ‘변태’적인 일이 아닐 수 없다. 사랑이나 친밀성이 공감과 연민에 근거한다면, 비슷한 경험과 조건에 있는 사람들끼리 사랑에 빠지는 것이 ‘자연스럽다’. 만일, 여성의 오르가즘이 20분이고 남성은 5분이라면, 20분은 20분끼리 5분은 5분끼리 섹스 하는 것이 행복에 이르는 길 아닐까? 그러므로, 전혀 다른 세계 즉, 극도로 성(차)별화 된 한국사회에 살고 있는 남성과 여성의 섹스 트러블은 필연적일 지도 모른다. 내 이야기는, 생각하기 나름이라는 것이다. 동성애가 문제가 아니라, 동성애냐 이성애냐를 구분하는 경계선은 누가 정하는가가 진짜 문제(질문)거리다. 또한, 똑같은 인간을 다른 종(늑대, 여우...)으로 분류하여, 다르게 취급하는 성별 제도가 앞에 말한 모든 문제들의 근원일지 모른다.

여성 동성애자 인권운동 단체인 ‘한국레즈비언상담소’에 의하면, 이성애자들이라면 경찰서로 가야할 일들이 동성애자의 경우엔 온통 이 단체에 접수된다고 한다. 폭행, 사기, 해고, 강간, 감금, 스토킹, 인신매매 등으로 고통받는 동성애자와 그 가족들은, 피해자가 동성애자라는 이유만으로 도움은 커녕, 세상 어디에도 맘 놓고 호소할 곳이 없다. 이들이 당하는 폭력은 ‘아웃팅(동성애자임을 본인의 의사와 무관하게 강제로 알리는 것)’위협을 전제로 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아웃팅 시키겠다고 협박하여 동성애자를 폭력에 무방비 상태로 노출시키고, 일상적인 인간관계, 사회적 관계망을 파괴하여 피해자를 오갈 데 없는 신세로 만든다. 그러나 피해를 입은 동성애자는 ‘더 큰 아웃팅’ 때문에 피해를 가시화하는 것 자체에 어려움을 겪으며, 법적 구제 절차를 밟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동성애자임을 알리겠다는 위협이 한 사람의 인권을 몰수하는 ‘권력’일 수 있는 것은, 우리사회에 깊숙이 퍼져있는 동성애 혐오적인 가치관 때문이다. 그런 점에서, 이 문제의 가해자는 사회구성원 모두라고 볼 수 있다. 아웃팅은 동성애자에 대한 폭력이며, 인권 침해다. 인권이 이성애자의 인권만을 의미하지 않는다면, 아웃팅 범죄에 대한 사회적 차원의 개입과 처벌이 절실하다.



2005.04.13(수) 19:33
?

SCROLL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