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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혼의 문턱 낮아져야

현행 이혼제도 무엇이 문제인가?


윤정은 기자

결혼 5년차 주부인 이모씨. 결혼 초부터 아들을 낳기 위한 잠자리 일자와 회수까지 강요한 시어머니의 부당한 간섭을 견디지 못해 재판상 이혼을 청구했는데, 2년 가까이 이혼소송이 계속됐다고 한다. 끝내 재판부는 “시어미니와 남편이 반성을 빛을 보이고 있으며 달리 특별한 이혼사유가 존재하지 않는다”는 이유로 이혼청구를 기각했다. 당사자는 도저히 다시 혼인생활을 지속할 수 없다며 지금도 별거상태를 유지하고 있다.

한 쪽이 거부하면 ‘재판 상 이혼 어려워’

우리 사회에서는 한쪽이 도저히 결혼생활을 유지할 수 없다고 호소하더라도 배우자가 이혼에 합의해주지 않았을 때는 재판을 거쳐 이혼을 인정 받아야 한다. 현행 이혼제도에서 재판상 이혼은 ‘유책주의’에 입각해 이혼을 청구하는 한쪽이 상대방 배우자가 이혼의 책임이 있음을 입증해야 하고, 이혼의 여부는 판사가 결정하는 것이다.

이러한 ‘유책주의’에 입각한 재판상 이혼과 달리, 이혼 당사자 양자가 합의한 협의 이혼이 있다. 협의 이혼에서는 부부 당사자들이 이혼의사 합치여부를 확인하는 절차만 거치면 이혼이 가능하다.

재판상 이혼에서 우리 민법은 ‘유책주의’에 입각해 있지만, 서구의 대부분 나라들은 이혼무책주의(파탄주의)를 취하고 있다. 즉, 부부 양쪽 가운데 어떤 이유로든 어느 한쪽이 부부 공동생활을 할 수 없다고 판단하면, 다른 한쪽의 책임 유무에 관계없이 이혼을 인정하는 것이다.

권정순 변호사는 현행 이혼제도에 대해 “재판상 이혼에서는 엄격한 유책주의가 문제”가 되고 있으며, “협의 이혼에서는 이혼의사 확인에만 그치는 것이 이혼 이후 많은 문제를 발생시키고 있다”고 지적했다.

재판상 이혼이 엄격한 유책주의를 띠고 있기 때문에 사실상 결혼생활이 파탄에 이르렀음에도 이혼이 인정되지 않아 “당사자에게는 고통스러운 혼인생활의 지속을 강요하는 경우가 존재”하기 때문이다. 현행 이혼제도에서 재판상 이혼이 지나치게 경직되게 운용되고 있다는 지적도 여성단체들을 통해 제기되어 왔다.

유책주의 완화, 파탄주의로 가야

권정순 변호사가 실례로 드는 또 하나의 예는 남편이 외도 이후에 부인이 협의이혼을 해주지 않아 재판상 이혼소송을 제기했는데, 이 경우도 이혼 청구가 기각됐다. 파탄의 책임이 있는 유책 배우자인 남편이 이혼청구를 할 수는 없기 때문이다. 이 부부의 경우도 여전히 별거 중이며 남편은 항소, 상고를 통해서라도 반드시 이혼하겠다는 의사를 밝히고 있다고 한다.

협의 이혼에서도 문제는 있다. 판사가 당사자들에게 간단한 이혼의사만 확인하는 실정이라서 이혼 이후의 생활이나 미성년자녀의 친권 행사자 및 양육 문제 등에 대해서는 질문만 하고 그 ‘강제력을 두지 않는다’는 것이다. 당사자 양쪽이 이혼을 원했을 때 이혼은 인정되어야 하는 것은 당연하지만, 이혼 후 제반 문제에 대한 담보할 절차가 없다는 것이다. 이런 이유로 협의 이혼 이후, 재산분할이나 자녀 양육과 관련하여 ‘별도’의 소송이 제기되기도 한다.

현재 문제가 되고 있는 ‘이혼숙려기간’ 도입은 재판상 이혼과 협의 이혼 모두 포함해서다. 이지선 민변 변호사(법무법인 한결)는 숙려기간을 도입하고 있는 대부분 나라들은 이혼사유에 관련해 ‘파탄주의’를 취하고 있는 반면, “우리의 경우 엄격한 유책주의를 취하고 있는 재판상 이혼의 경우도 숙려기간을 도입하는 것”은 체계상으로도 문제가 된다고 지적했다. 또한 그는 재판상 이혼에 있어서 “엄격한 유책주의는 완화될 필요성”이 있다고 말했다.

당사자들의 의사에 따라 ‘혼인’이 성립하는 것처럼 ‘이혼’ 또한 당사자들의 의사에 따라 결정되어야 한다. 국가가 “건강한 국가 건설”을 운운하며 이혼을 막는 이혼숙려제도 등의 도입은 시대착오적일 뿐 아니라 개인의 행복추구권을 침해하는 처사다. 먼저 현행 이혼제도의 문제점으로 지적된 부분에 대한 제도적 개선이 이뤄져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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