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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뉴스 따라잡기]살인 부른 ‘매맞는 아이 증후군’


<앵커 멘트>


시청자 여러분, 혹시 매맞는 아이, 매맞는 아내 증후군이라는 말 들어보셨나요? 좀 생소하실텐데요. 쉽게 말씀드리면

평소 가정에서 상습적인 폭력에 시달리다 보니까 그 스트레스로 비 정상적인 행동을 하는 걸 일컫는데요.


극단적인 경우 살인까지 저지를 수 있다고 합니다. 그만큼 가정 폭력이 심각한 수준에 이르렀다는 반증이기도 하겠죠? 최근 법원이 이같은 사건과 관련해 의미있는 판결을 내려 주목을 받고 있습니다.


최대수 기자 어떤 결정이 내려졌죠?


<리포트>


최근 아들과 어머니가 함께 아버지를 살해한 사건에 대해 법원이 이례적으로 형량을 감해 선고했습니다. 이들이 이른바‘매 맞는 아이 증후군과 매 맞는 아내 증후군’을 앓고 있었다는 점을 인정한 것인데요.


물론 일반적인 상식에 비춰 볼때 살인은 어떤 이유에서든 정당화 될 수는 없습니다.


그러나 과연 어느정도였기에 법원도 그런 결정을 내린 것인지 자세히 취재해봤습니다.


올해 초, 28살 권 모씨가 어머니와 함께 친아버지를 살해한 사건이 있었습니다. 당시엔 ‘패륜모자’로 세간의 지탄을 받은 사건. 그러나 가족들은 아직도 이들이 살인을 저질렀다는 걸 믿지 못합니다.


<인터뷰>이 모씨(권씨의 아내):“(남편을) 안 만나보셔서 모르겠지만 착해요. 이 사람이 내 사람이 아니라고 생각한 적 없었어요. 선하고 책임감 있고 성실하고..”


권씨는 7년간 사귄 아내와 결혼해 남 보기엔 행복한 결혼생활을 해왔습니다. 사회복지사로 봉사활동까지 하던 착실한 사람이었다는데요. 그렇다면, 이런 그가 어떻게 친아버지를 죽인 걸까요?


이들 가족이 얼마 전까지 살았다는 경기도의 한 마을에서 만난 권씨의 누나는 충격적인 속내를 털어놓았습니다.


<인터뷰>권 모씨(권씨의 누나):“매일 아버지가 우리를 던져가지고..(어디서 던졌다는 얘기예요?) 방안에서 바깥으로.. ”


아버지는 가족들을 상대로 폭력을 일삼았던 것입니다.


<인터뷰>권 모씨(권씨의 누나) :“장롱에다 우리를 세워놓고 칼로 막 찍고 그랬던 것, (방앗간에 있는)기계 속에 집어넣고 다 죽여버린다고 했던 것...”


어머니가 이혼을 요구하자 아버지는 외갓집을 몰살하겠다며 협박까지 했다는데요. 결국 가족들은 그저 참고 또 참을 방법밖에 없었다고 합니다.


<인터뷰>권 모씨(권씨의 누나) :“그렇다고 외할머니와 친척들이 (거주지)를 다 옮길 수 있는 건 아니잖아요. 어느 곳에서 해코지를 할 지 몰랐기 때문에 그게 제일 무서웠던 것 같아요. 엄마는 동생들, 할머니 할아버지들에게 해가 가면 안 된다고 생각을 해서... 우리가 참으면 다른 사람들은 살 수 있잖아요.”


가족들은 특히, 아버지가 집안에서는 가족을 억압하고 폭력을 휘두르면서도, 밖에서는 전혀 다른 이중적 모습을 보여 왔다고 말합니다.


<인터뷰>동네사람 :“그런 모습만 늘 보였기 때문에 가족들이 그 정도까지 압박을 받고 굉장히 힘들었다는 것을 우리는 상상을 못했죠. 그래서 굉장히 충격적이었고.. ”


최근 항소심에서 법원은 권씨의 형량을 15년에서 12년으로, 어머니는 10년에서 6년으로 감해줬는데요, 이들이 ‘매 맞는 아이 증후군’과 ‘매 맞는 아내 증후군’을 앓고 있었던 걸 감안해 준겁니다


<인터뷰>이 모씨(권씨의 아내) :“친정아버지가 와서 우리 사위 왔냐고 하면서 안아줘요. 그러면 잠을 못자요. 너무 좋아서.. 아버지가 날 안아줬다고. 나는 우리 아버지도 아버지지만 정말 결혼 잘 했다고 얘기하는 걸 보면 그런 집(평범한 가정)에서 자랐으면 잘 됐겠죠.”


‘매 맞는 아이, 매 맞는 아내 증후군’은 상습적 폭행을 당해 우울, 공황 증세 등 정신병적 증상을 보이는 것인데요. 폭력에 대한 두려움으로 자신도 모르게 극단적 행동까지 할 수 있다고 합니다.


<인터뷰>조용범(임상심리학 박사) :“학대받는 사람이 폭력적인 행동을 하는 것은, 그 사람이 원래 갖고 있는 성격이나 성향 때문에 폭력적인 행동을 하는 것이 아니고 모든 정서적인 사람이 학대를 받는 상황에 가면 폭력자에게 폭력적인 행동을 하는 경우가 얼마든지 있고..”


양 모씨는 감옥에 있는 딸의 편지만 보면 가슴이 저립니다. 딸은 결혼 10여년 동안 남편의 폭행에 시달리다 남편을 살해했다고 합니다.


<인터뷰>양모씨(최씨의 어머니) :“그 사람은 사람이 아니에요. 구석에다 몰아넣고 턱 받치고 앉아서 말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늘어지면 밤을 새워도 한이 없어요. 정말 정말 지겨워요. 머리가... 정신병자가 안 된 것만 해도 감수해야 할 정도로...”


양 씨는 딸이 사위에게 폭행을 당하면서, 심한 스트레스로 성격까지 바뀌었다고 말합니다.


<인터뷰>양 모씨(최씨의 어머니) : “성격이 온유하고 그랬거든요. 그런데 어떻게 이 사람하고 만나서 살면서 그 난폭한 여자 입에서 난폭한 여자 입에서 욕이 나왔어요. (그리고) 술이라는 것을 입에 대지도 못했던 아이에요. 그런데 어느 날인가부터 술을 정신없이 마실 정도로 애가 변했더라고요.”


양씨의 딸은 옥살이를 하는 동안에도 계속 맞았던 때의 악몽을 떠올린다고 합니다. 딸의 고통이 언제나 끝날 수 있을지,양씨는 안타깝습니다.


<인터뷰>양 모씨(최씨의 어머니) :“차라리 거기서 인생을 마감했으면 좋겠다고 말을 해요. 왜 그러냐고 물으니 그 사람이 안 죽은 것만 같고 나오면 다시 괴롭힐 것 같데요. 그리고 어딘가에 살아 있을 것만 같다고 말을 해요.”


가정 폭력의 경우, 아내와 자녀들이 함께 피해를 입는 경우가 대부분인데요. 이 때, 아이들이 받는 충격은 성인의 경우보다 더 심각합니다.


지난 달, 알콜 중독자인 남편에게 20여년간 폭행을 당했던 여성이 남편을 충동적으로 살해한 사건이 있었는데요.


<인터뷰>이 모씨(이 씨의 동생) : “엄마 한번 면회하러 갈래? 울지 말고.. 우는 일 없도록 하려고 외삼촌들 다 와있는 것인데..”


사건 당시, 아이들은 성장발달검사 결과 대인기피증과 극도의 불안 증세를 나타냈는데요. 한 달이 지난 후, 다시 만난 아이들은 겉모습은 밝아보였고 안정을 찾은 듯 했습니다.


<인터뷰>큰 아들 :“무섭지는 않았고요. 겁도 안났고요. 그냥 살면 돼죠.(그냥 사는게 뭐예요?)열심히..”


그러나 아버지에 대한 얘기가 나오자 바로 눈앞에서 당하는 일인 듯, 참고있던 분노를 터뜨렸습니다.


<인터뷰>큰 딸 :“(아빠하면 뭐가 제일먼저 생각나요?) 알콜중독.. 담배.. 술먹을 때는 못말려요. 개만도 못한 인간이에요.”


사건이 있기 전까지, 아이들은 아빠의 폭력이 무서워 엄마의 곁을 한시도 떠나지 않았다는데요. 이제 엄마가 돌아와 함께 사는 것이 소원이라고 합니다.


<인터뷰>큰 딸 :“(앞으로 어떻게 살고 싶어요?) 교회도 다니고요. 행복하게 살거예요. (누구랑?) 동생들이랑 나랑... (엄마보면 무슨 얘기 제일 먼저 하고 싶어요?) 사랑해요. 미안해요.”


최근 여성부 발표에 따르면, 지난 1년 간 배우자에게 폭행을 당한 부부는 15.7%! 이 중 남편이 폭행한 경우가 대부분인데요, 피해를 당하고도 경찰에 신고하는 경우는 10명 중 불과 한명 꼴! 도움이 된다는 기대가 없기 때문입니다.


<인터뷰>조용범(임상심리학 박사) :“아직은 한국에서는 참아야한다. 참아야 된다. 그러는데 어쩌면 지금과 같은 학대받는 여성증후군을 통해서 결국은 그게 살인이라든가 이런 것으로 이어지는 그런 사례들이 앞으로는 더 늘어날 가능성이 많기 때문에 이 사회전체 시스템이 합리적으로 개선이 돼야 되는 것들을 고려해야 되는 시점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물론 살인은 큰 죄임에는 틀림없고 또 법정에서 ‘매 맞는 아이,매 맞는 여성 증후군’을 얼마나 인정할 것이가에 대해서는 논란이 있지만, 가정폭력이 또 다른 비극을 부르지 않도록 사회의 지속적인 관심이 필요한 건 분명합니다.


[사회] 최대수 기자
입력시간 : 2005.12.29 (09: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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