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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인권, 법보다 사회의식 바뀌어야"


[30돌 맞은 국내 최대 女단체 '한국여성의전화' 정춘숙 대표]

성폭행범 혀 자른 주부 돕고… 남편폭행에 태아사산돼 살해, 정당방위 주장하는 등 활동
"왜 남의 집안일에 참견이냐" 항의 전화·난동 지금도 많아
조선일보 | 이미지 기자 | 입력 2013.06.22 03:19

 





전국 25개 지부, 회원 수 1만명 국내 최대 여성단체 '한국 여성의 전화'가 30돌을 맞았다. 21년간 여성의 전화에서 근무한정춘숙(49) 대표를 만나기 위해 서울 은평구 녹번동 여성의 전화를 찾았다. 골목길과 가파른 언덕을 오르니 국내 최대 여성단체라는 말이 무색할 정도로 소박한 건물이 보였다. "체력을 보고 뽑아야 할 만큼 일이 많아요." 사무실에서는 전화벨 소리가 쉼 없이 울렸다.




↑ [조선일보]정춘숙 대표는“아픈 이의 친구가 되고 차별받는 이의 언니가 되고…”라는 내용의 창립 30주년 기념 노래‘시작했으니, 두려움없이’를 작사했다. 여성의 전화는 지난 30년간 개인적인 문제로 여겼던 여성폭력 문제를 사회문제로 이끌어냈다. /이덕훈 기자
제1호 상담자는 발족 이틀 후인 1983년 6월 13일 전화를 걸어온 고위 공직자 부인이었다. 여성은 반복되는 남편의 폭력을 견딜 수 없다며 입을 열었다. 이를 계기로 여성의 전화는 국내 최초로 가정 폭력 실태를 조사했다. 42.4% 여성이 '남편에게 맞은 적이 있다'고 대답했다. 여성의 전화는 가정 폭력이란 말도 없던 시절 '아내 구타'라는 용어를 처음으로 사용했다.

그 후로 30년, 정 대표는 "지금도 고위 공직자, 전문직 종사자 등 소위 '알 만한 사람들'의 가정 폭력 사례가 꾸준히 접수된다"며 "여전히 사적인 공간으로 인식되는 가정 내 폭력은 줄어들지 않고 있다"고 말했다. 여성의 전화가 지난 30년간 상담한 78만6165건 중 39.1%가 가정 폭력이었다.

정 대표는 "우리가 접수한 비공식적인 첫 번째 전화는 여성들의 하소연에 앞서 자신을 '택시기사'라고 밝힌 남자의 항의 전화였다"고 했다. "왜 여성단체가 남의 집안일에 이러쿵저러쿵하느냐"는 내용이었다. 정 대표는 "당시는 '집안일에 여성단체가 끼어들어서는 안 된다'는 글이 언론사 사설에 실리기도 하던 때였다"고 말했다.

갑자기 대화 소리가 들리지 않을 정도로 시끄러운 자동차 경적 소리가 울리기 시작했다. 사무실에 있던 활동가들이 창문에 다가가 바깥 상황을 확인하더니 익숙한 듯 창문을 닫고 일을 하기 시작했다. 인터뷰는 5분 정도 중단됐다. 정 대표는 "인터폰과 차량 등 사무실 집기를 부수거나 찾아와 항의하는 사람들이 있다"며 "벌금형을 선고받은 사람까지 있었다"고 말했다. 아직도 여성단체가 무차별적 분노의 대상이 된다는 사실이 믿기지 않았다. 그는 "30년간 여성운동을 해왔지만 시민의 의식과 문화는 법과 제도의 변화 속도를 따라가지 못하는 것 같다"며 씁쓸해 했다.

여성의 전화는 1988년 자신에게 달려드는 성폭행범의 혀를 자르고 몸을 피했다가 징역 1년을 구형받은 주부 변모씨의 무죄를 이끌어냈고, 1991년 남편의 폭행으로 임신 4개월이었던 아이가 사산되자 남편을 살해한 주부 남모씨의 정당방위를 주장하는 등 여성 폭력 사건에 적극적으로 나섰다. 3대 여성인권법이라 불리는 '성폭력특별법', '가정폭력방지법', '성매매방지법' 제정도 이끌어냈다. 최근에는 '데이트 폭력', '아내 강간' 등 새로운 여성 폭력 문제에 대한 활동도 펼치고 있다.

정 대표는 "여성들의 인권 의식과 폭력에 대한 민감성은 높아졌지만 사회 인식이 크게 바뀌었는지는 의문"이라며 "그런 점에서 30년 동안 아무것도 해결된 것은 없습니다"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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