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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65일 중 360일 맞고 산, 엄마의 29년은 악몽”
남편 살해로 기소… 큰딸 “엄마 선처해달라” 탄원서

경향신문 | 곽희양 기자 | 입력 2012.04.15 22:05 | 수정 2012.04.16 0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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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카페로 고객센터 이동 ㄱ씨(54·여)는 스물다섯이던 1983년 교사인 아버지의 소개로 남편 ㄴ씨(55·교육공무원)를 만나 결혼했다. 그러나 신혼의 단꿈도 잠시였다. ㄱ씨의 결혼생활은 식을 올린 지 3~4개월이 지나면서 지옥으로 변했다. 남편의 외도 문제로 말다툼을 한 게 발단이었다.

싸움 도중 남편의 뺨을 때린 ㄱ씨에게 돌아온 것은 남편의 무자비한 폭력이었다. 하지만 그것은 시작에 불과했다. 매일같이 폭행이 이뤄졌다. 딸을 둘 낳았지만 남편의 폭력은 멈추지 않았다.

남편은 '첫날밤 순결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날마다 ㄱ씨를 추궁했다. 이뿐만 아니었다. ㄱ씨가 동네 가게만 다녀와도 "누구를 만나고 왔느냐"고 추궁하면서 어린 딸들이 보는 앞에서 속옷을 벗기기도 했다.

ㄱ씨는 '앞으로 잘하면 남편이 때리지 않겠지'라고 생각했지만 소용없었다. 걸레자루를 휘두르는가 하면 흉기를 들이대는 일도 있었다. 남편의 폭력은 갈수록 심해졌다. "당신 친정식구 중에 도움되는 사람이 하나도 없다"면서 ㄱ씨를 안방에 가둬놓고 30분 간격으로 밤새 주먹질을 퍼붓는 일도 있었다.

남편의 폭력에 견디다 못한 ㄱ씨는 1990년 가출을 시도했다. 하지만 둘째 딸이 매일 울고 지낸다는 담임교사의 전화를 받고 하는 수 없이 집으로 돌아왔다.

ㄱ씨는 두 딸을 생각해 아이들이 대학생이 될 때까지만 참기로 했다. 하지만 그마저 쉽지 않았다. 2004년 둘째 딸이 시신경척수염이란 희귀질환을 앓게 됐다. 결국 둘째 딸은 시각장애인이 됐다. 4년 뒤에는 자신도 딸과 같은 병을 얻었다. 당시 ㄱ씨는 목욕관리사로 일하고 있었지만 1년에 3000만원에 이르는 딸과 자신의 치료비를 감당할 수 없어 이혼조차 쉽지 않았다.

남편의 손찌검은 날로 심해졌다. 남편은 대학 중퇴인 ㄱ씨의 학력을 꼬투리 잡아 심지어 아파트 값이 떨어지는 것도 ㄱ씨 탓이라고 했다. ㄱ씨가 응급실에 실려간 적도 한두 번이 아니었다. 하지만 두 딸의 앞날을 생각해 29년간 단 한 차례도 경찰에 신고하지 않았다.

지난달 3일 남편은 갑자기 아침식사를 하다 둘째 딸(25) 앞에서 갑자기 ㄱ씨의 옷 속에 손을 넣어 추행했다. 순간 ㄱ씨는 악몽과 같은 지난 29년이 떠올랐다. 그는 집에 보관 중이던 수면제와 신경안정제를 음식에 섞은 다음 남편에게 건넸다. 그리고 약에 취해 잠든 남편의 머리를 둔기로 여러 차례 내리쳤다. 남편은 그 자리에서 숨졌다. 악몽보다 끔찍한 29년간의 결혼생활에 마침표를 찍는 순간이었다. ㄱ씨는 살인혐의로 검찰에 기소됐다.

큰딸 ㄷ씨(27)는 지난 13일 재판이 진행 중인 수원지방법원 안산지원에 "엄마를 선처해달라"면서 탄원서를 냈다. 그는 탄원서에서 "365일 중에 360일을 엄마가 맞았다. 아빠의 걸음소리만 들어도 가슴이 철렁할 정도로 온 가족이 두려움에 떨며 살았다"고 적었다. 딸은 "한순간의 실수로 수감생활까지 해야 하는 엄마가 불쌍하다"고 말했다.

지난해 한국가정법률상담소의 통계를 보면 남편이 아내를 때리는 경우가 전체 가정폭력 중 81.9%를 차지했다. 흉기를 사용한 경우는 2010년 13.3%에서 25.5%로 두 배 가까이 늘었다.

한국여성의전화 가정폭력상담 고미경 소장은 "극심한 공포와 불안감에 시달리는 학대피해 여성들이 범죄를 저지르게 된 과정을 살펴봐야 한다"면서 "집안일이라는 편견 때문에 가정폭력 피해자를 보호하지 못하는 구조가 계속되고 있다"고 밝혔다.

조인섭 변호사(36)는 "지속적으로 가정폭력에 시달린 여성의 극단적인 행동은 여성 입장에서 방어적 선택으로 볼 수 있다"면서 "외국에서는 이를 감안해 정당방위로 인정한다"고 말했다.

<곽희양 기자 huiyang@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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