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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08.10 09:28

여백 62호 - 여는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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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3 여는 글
나는 행복한 여성의전화 상근활동가이다!
송문이

작년 3월 말, 8년간의 해외 생활을 마치고 비행기에서 내릴 때 자유롭던 영혼이 덫에 걸린 양 공기가 답답하게 느껴졌었다. 수많은 관계 속에서 나 자신을 지켜나가야 한다는 부담감과 개발도상국 생활에서 얻은 무소유의 기쁨을 잃어버릴지 모른다는 두려움이 엄습했다. 행복이 벌써 저 멀리 도망간 느낌이었다고나 할까?

심신이 약해진 부모님을 보며 정착하기로 마음을 먹었지만 8년 전의 물건들로 가득 찬 나의 방을 보니 갑갑증이 더 심해졌다. 서랍 속 물건 정리를 하면서 “나는 변했다. 나는 과거의 나로 돌아가지 않을 것이다. 결혼하지 않아도 당당하게 살 수 있다. 사회적 지위를 말해주는 명함이 없어도 괜찮다.”를 수없이 되뇌었다. 9월, 누워만 계시는 아버지 간병을 즐겁게 하는 기쁨이 연해질 무렵, 나 자신이 한없이 작아 보이기 시작했고 거울 속의 나는 8년 전 미소 없는 모습으로 돌아온 듯하였다. 더 늦기 전에 나 자신을 찾고, 태국에서 공부했던 젠더개발 지식을 활용해야 한다는 강박관념이 생기기 시작했다. 다행히도 해외생활 동안 서울강서양천여성의전화를 통해 맺은 인연의 끈을 놓지 않았던 것이 큰 위로가 되었다.

내 나이가 몇인지 헷갈리기 시작하면서 자매애가 더욱 소중함을 느낀다. 더불어 사는 세상, 여성이 있기에 더 아름답고 더 행복하다. 여성의 전화는 모든 여성들의 보루라는 확신이 있다. 상담원이든 내담자이든 우리는 여성이라는 이름으로 함께 살아가고 있다. 내가 남을 위해 무언가를 해줄 수 있지만 때로는 내가 남의 도움을 받을 수 있는 처지가 될 수도 있다. 중요한 것은 내가 아플 때 아프다는 소리를 낼 수 있어야 하고 남의 그 소리를 들을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나의 문제 속에 나를 가두면 나의 소리를 나만 듣게 되어 남의 소리에 귀 기울일 여유가 없게 된다. 누군가가 아프다는 소리조차 낼 수 없어 겨우 내는 신음소리까지 들을 수 있게 되면 우리는 그만큼 마음이 넓어져 행복할 것이다. 오늘도 보이지 않는 곳에서 신음하는 한 여성이 있다면 "나의 행복을 위하여! 나의 책임이다!"라는 각오로 출근한다. 나는 행복한 서울강서양천여성의전화 상근활동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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