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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08.10 09:45

여백-회원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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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며 그리며 - 정 경 화 -

다가오는 가을 전시회를 준비하고 있는 즈음에 지난번 전시회에 관한 글을 써 달라는 부탁을 받았다. 지나온 모든 시간은 나름의 의미와 함께 아쉬움을 남기게 마련이지만 지나간 전시회가 남겨준 것은 아쉬움과 함께 새로운 출발이 아닐까 생각한다. 그런 면에서 굳이 이야기를 풀어내자면 전시회에 국한된 것이 아닌 그림을 그리며 살아가는 나의 일상을 이야기해야 할 것 같다.

벌써 며칠째 지난 6월의 전시회를 생각해 보았지만 거짓말처럼 아주 오래된 일 인양 느껴지는 것은 매일 같이 그림을 그리고 새로 완성 되어져 가는 그림에 정을 쏟고 있기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추웠던 지난겨울에도 꽃피던 화창한 봄에도 이제 천둥 번개와 소나기가 내리는 장마철에도 나는 언제나 작업실에서 작업을 한다. 이것이 나의 일상이고 삶이다. 많은 사람들의 경우 어떤 일을 현재 열심히 하고 있지만 그 일로 부터 자신의 정체성을 밝혀 주는 피드백을 반드시 받고 있는지는 알 수가 없다. 그런 면에서 나는 분명 축복받은 사람이고 행복한 사람임이 틀림없다고 자부한다.

어려서부터 나의 놀이에 대한 기억은 대부분 뭔가를 종이에 그리고 있었던 기억으로 가득하다. 무엇을 그렇게도 그렸는지 명확히 알 수는 없지만 딱히 떠오르는 것은 별을 그리는 즐거움이 컸던 것 같다. 사람이 태어나서 하는 모든 행동은 자신을 표현 하는 것이다. 웃고 울고 노래하고 말하고 춤추고 그림을 그리고 등....... 그린다는 것은 내가 하고 싶은 말의 또 다른 표현이다. 이렇게 하고 싶은 말을 공개적으로 하는 것이 전시회이다. 전시회는 나의 작업 즉 내가 하고 싶은 말을 세상을 향해 하는 것이므로 결국 나를 드러내고 보여 주는 것 이다. 생각해보면 두려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사실 벌거벗고 대중 앞에 선다는 것은 얼마나 많은 용기가 요구 되어지는 일이며 어떤 비판도 감수할 각오와 자신감이 있어야 하는 일이다. 작업실에서 나의 손을 통해서 완성 되어져 간 그림들을 전시장에서 마주 했을 때는 이미 내 손을 떠나버린 그 홀로의 대상으로 존재한다. 작업실에서 미처 보지 못했거나 느끼지 못했던 것이 전시장에서는 또렷이 보이기도 한다. 마치 집 안에서 늘 보던 아이들을 공개된 어떤 장소에서 대상으로 바라보았을 때 왠지 낯설고 새롭게 느껴지듯이 그것들은 자신만의 생명을 가지고 그 곳에 있는 듯하다. 나의 생각과 본질 등 나의 심상들이 캔버스 위에 쏟아져 객관화 되어 있고 나는 그것을 관람객들과 함께 바라보면서 다시 언어화시켜 대화를 나누게 된다. 이것은 내가 미술치료사로서 내담자들과 함께 수업하고 이야기 나누는 것과 다를 바가 없다. 그 시간 나는 얼마나 많은 치유를 받고 행복해 지는지...... 그러나 이런 행복함은 그렇게 쉽게 획득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갤러리의 불빛은 은은하고 화사하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은 전시장의 화려하고 멋진 분위기를 보고 예술적 삶을 동경하기도 한다. 그러나 조금만 주의 깊게 생각해 보라. 장르를 초월해서 수많은 예술가들은 삶의 대부분의 시간을 연습하는데 소진하고 있고 화가들은 작업실에서 긴긴 작업의 시간을 견뎌내고 있다. 마치 매미가 땅속에서 7년 동안 견디다가 마지막 해에 땅위로 올라와 여름 한철 노래하듯이 공연과 전시회란 길고 긴 연습과 작업의 결과를 잠깐 보여 주는 것이다. 예술적인 삶이란 진정 그 삶을 사랑하고 일상으로 살아가는 것이지 아름다운 무대 드레스나 화려하고 멋진 갤러리의 오프닝 파티가 아니다. 만일 화려함을 동경하여 발을 들여 놓게 되면 실망으로 마음만 아플 뿐이다. 내적 삶의 호흡과 질서 그리고 태도가 그대로 드러나는 것이 예술 작품들이므로 그 삶은 오히려 외로움이 더 혹독할 수도 있다. 나를 쏟아내고 확인하고 다시 정돈 시키는 이 과정은 하나의 기도이고 수행하는 것과 같다. 그림을 그린다는 것은 일종의 유희이자 캔버스에 시간을 새기고 마음을 새기고 나의 삶을 새기는 생활의 일부분이다. 누구든지 자신에게 주어진 그 무엇을 소중히 가꾸어 가는 것이 인생이 아닐까?

삶이란 특별할 것도 없는 그 무엇들을 특별하게 살아내는 것. 내게 있어서 그림을 그린다는 것은 바로 그런 것이다. 작업실 창을 통해 멀리서 세상의 소리가 들려온다. 누군가의 삶의 소리가...... 내게는 지금 이곳에서의 이 일이 세상을 살아가는 일이기도 하다. 장마가 시작되는 오늘도 나는 작업실에서 내 삶을 다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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